
47일간의 물속 세계일주, 다섯 번째 이야기
미국 캘리포니아의 차가운 켈프숲
⚠️ [Editor's Note: 2026년의 회고]
쿠바의 멈춰진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LA)였다.
문명의 향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두 가지를 마주했다.
차가운 캘리포니아 바닷속 켈프(Kelp) 숲, 그리고 25년 전 내가 간절히 꿈꿨던 미래였다.
이것은 캘리포니아의 기록이자, 잊고 있던 꿈에 대한 기억이다.
1. 밀가루의 저주: 김치찌개를 찾던 나는 왜...
집을 떠난 지 40여 일이 지났다.
쿠바에서 매일 콩과 퍽퍽한 빵 고무 같은 고기에 지칠 대로 지친 내 위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LA 공항에 내리자마자 렌터카를 빌려 내비게이션에 '한인타운'을 찍고 엑셀을 밟았다.
머릿속엔 오직 하나뿐이었다.
"빨간 국물. 얼큰한 거.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한인타운 식당가에 도착해 즐비한 한글 간판을 훑었다.
분명 내 눈앞엔 '원조 할매 순두부', '양푼 김치찌개'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귀신에 홀린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찌개 집이 아니라 '만다린'이라는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머리는 "매콤한 국물!"을 외치는데,
내 손은 메뉴판의 간짜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밀가루의 저주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짜장을 비비며 나는 내 자신의 이중성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탕수육에 만두까지 시켜놓고,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으면서도 배를 두드렸다.
그때 깨달았다.
40일간 굶주린 한국인에게 짜장면의 유혹은 얼큰한 국물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이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2. 물속은 동해, 배 위는 천국 (ft. 럭키가이)
배도 부르겠다,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과연 LA에서도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호기심에 구글링을 하다 운 좋게 벤투라 하버(Ventura Harbor)에서 출발하는 피스(PEACE) 호 투어를 발견했다.
탱크와 웨이트를 안 가져가서 선장님께 구걸해야 했던 흑역사는 덤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여긴 자기가 쓸 다이빙 공기탱크와 웨이트를 직접 가져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세계일주 중인 나에겐 있을리 없는 장비였다.
"You are lucky guy." 선장님은 웃으며 스페어 탱크를 빌려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럭키가이였다.


입수하자마자 터져 나온 한마디. "여기 속초 아니야?"
15도의 차가운 수온, 울창한 미역과 감태 숲. 영락없는 동해 바다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스케일이 달랐다.
바위 틈엔 거대한 랍스터가 숨어 있었고, 머리 위로는 귀여운 상어가 유유히 지나갔다.
거대한 켈프(Kelp) 숲은 햇빛을 받아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그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동화 속 장면 같았다.







무엇보다 다이빙 후 갑판 위 해수 월풀(Jacuzzi)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기는 휴식은 천조국 스케일 그 자체였다.
차가운 바다와 따뜻한 자쿠지의 대비. 이게 바로 '미국식 다이빙'이구나 싶었다.


3. 15년 전 나의 꿈: Brooks Institute
다이빙을 마치고 LA 북쪽의 부촌, 산타바바라(Santa Barbara)로 향했다.
여유로운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학교, 브룩스 인스티튜트(Brooks Institute).
사실 이곳은 15년 전, 내 꿈이 머물던 곳이었다.
당시 나는 입학원서를 냈었고, '조건부 합격'까지 받았었다.
만약 그때 내가 이 학교를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캠퍼스 앞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상상했다.
"Master of Fine Arts in Photography"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확신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꼭 만들어서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수중사진을 전공하러 오겠노라고. 15년 전의 나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약속했다.


4. "밥은 먹고 다니냐?"
청승맞게 남자 혼자 여행하는 게 안쓰러웠을까.
밥 사주러 한국에서 날아온 형님이 있었다. 철형님.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고마운 사람이다.

남자 둘이서 프리미엄 아울렛을 하루 종일 쏘다녔다.
미국 서부의 소울푸드 인앤아웃(IN-N-OUT) 버거를 베어 물었고, 석양 지는 말리부 해안길을 드라이브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가 툭 던진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다이빙도 좋았고 꿈을 확인한 것도 좋았지만, 타지에서 만난 사람의 온기만큼 따뜻한 건 없었다.
참 벅찬 여행이다.



Outro. 마지막 여정을 향해
꿈에 그리던 학교를 가봤다는 것만으로도 LA 여행은 100% 만족이었다. 짜장면으로 배를 채우고, 다이빙으로 바다를 채우고, 친구와의 의리로 마음까지 채웠다.
47일간의 긴 여정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지중해의 몰타에서 시작해 홍해의 이집트를 거쳐, 카리브해의 멕시코와 쿠바를 지나 태평양 연안의 LA까지 왔다.
이제 세계일주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목적지만 남았다. 화산과 거북이의 섬, 하와이(Hawaii). 그곳에서 이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Next Episode] 👉 EP.6 하와이: 와이키키의 투명한 물빛과 난파선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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